우리는 왜 이런 곳 하나 없을까’ 파리 샹젤리제 거리. 이곳을 열 번 이상 거닐다보면 이런 생각에 가슴이 아프다. 런던,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 핀란드의 헬싱키만 둘러보아도 ‘우리는 왜 이렇게 하지 못할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시려온다. 그래서 해외출장에서 돌아오는 길이면 늘 싸우기만 하는 우리의 정치판, 경쟁력 없는 우리 대한민국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도 서울에 있을 때의 이야기. 부산으로 직장을 옮긴 뒤 시내 곳곳을 돌아보니 서울과 수도권의 인프라가 전혀 새로운 양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파리에서 서울을 생각하며 해왔던 가슴앓이를 이곳 부산에서 서울을 보며 다시 시작한다. ‘왜 부산에는 이런 곳 하나 없을까?’ 지지리도 시끄럽다고 생각했던 서울의 지하철망, 번잡하다고 싫어했던 대형쇼핑몰, 교통체증을 유발한다고 불평했던 대기업의 오피스빌딩, 심지어는 너무 비싸다고 가기를 꺼렸던 고급 레스토랑까지.
부산에 내려오기 전, 머리로만 생각했던 그 격차를 이제는 몸으로 안다. 그리고 최근 3~4년간 그 격차가 사회적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변하는 것을 느낀다. 과장인가? 결코 아니다. 수도권과 지방은 같은 나라가 아니다. 사회적 신분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이 지금도 거대하게 세워지고 있다.
‘우리야 이렇게 살면 된다. 서울과 비교할 수 없는 싼 값의 아파트지만 열심히 하면 65세까지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애들은 어떻게 하나. 지방에 직장이 있나? 미래가 있나? 서울로 갈 수밖에 없는데. 그 애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10억 이상 가는 30평대 아파트를 어떻게 구입할 수 있나?’ 국립대 교수들의 장탄식이다. 그러니 일반 시민들이야 무슨 말을 하랴.
‘아니 평당 3000만원이 아니고 300만원이라고?’ 서울에서 부산에 특강을 하러 내려온 지인은 부산 송도의 바다전망 좋은 아파트의 가격을 듣더니 두 번 세 번 확인한다. 주변 사람들의 한숨 어린 설명을 듣고선 마지막에 한 마디 보탠다. ‘오늘 부산의 실상과 부산 사람들의 고충과 인식이 어떤가를 정말 체험하고 갑니다.’ 고향이 부산이라는 이분이 이럴진대, 정책을 세우는 수도권의 고위관리들이 부산과 지방의 실상을 정말 가슴 아파 할까? 그저 ‘바늘에 찔리면 아프다는 것을 안다’는 수준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
분권과 지방균형발전을 내세운 참여정부의 4년. 역설적이게도 정말 역설적이게도 지방은 더 엉망이다. ‘획기적인 지역균형발전 방안’을 내년 초에 내어놓을 것이라는 대통령 정책실장의 말은 미안하지만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보다는 가급적 빨리 지방의 재정독립과 정책집행의 독립성을 보장해주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지방에 무슨 부동산투기가 있으며, 지방에 무슨 투기과열지구가 필요한가. 정책의 자율성과 그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이 해결되지 않으면 서울·수도권과 지방은 결국에는 ‘딴 나라’가 되고 만다.
가까운 미래. 우리 아이들이, 서울의 친구들이 좋은 차에 좋은 음식에 좋은 집에 좋은 학교에 그리고 좋은 직장에 다니는 것을 보고, 자기는 그렇지 못한 이유가 ‘마침내’ 지방에 직장을 구한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힐문조의 질문을 한다. “아버지, 2000년대 초반 서울과 수도권에 부동산 투기의 광풍이 불 때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 부끄러움과 민망함을 어이해야 하나.
ㅡ 김기홍, 부산대 경제학과 교수
1.성금요일 오후
친구여 언제나 그랬지
사월, 고난주간 성금요일 오후에
수유리의 신학대학 켐퍼스는
가장 부끄러운 이땅의 구호와 맞서 있었지
이날의 聖戰을 위하여
수유리의 하늘 아래선
마태수난곡 혹은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이
성난 우리의 脈을 가만가만 짚어내리고
수유리에 잠든 혼령들 하나하나 일으켜세우면
어디선가 순례자의 봇물 같은 슬픔이 밀려와
사월의 잔디 위에 바람으로 누웠지
그때 우리는 검은 祭衣로 몸을 감싸고
‘주의 기도문’ 마지막을 암송하였어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갑자기 수유리의 바람은 사나와져서
등나무 줄기를 사정없이 난타질하고
아아 복사꽃 흔들리는 사월
그리도 명징한 느릅나무 가지 사이로
불안한 우리들 내부를 가로지른 솔개 한 마리
휙, 날갯죽지를 꺾고 떨어져내렸다
“풀어주소서 나 두려움에 떨도다”
“라베라메 도미네”
“리-베라메 도-미네”
묵시의 하늘 아래
중세의 어둠은 내려와 길게 드러누었지
오후 세시를 향한 골짜기에서
단식보다 완강한 침묵에 인도되어
우리는 몇번이고 기도문을 암송했어
2.우리를 고독한 자이게 하소서
키리에, 키리에, 키리에
이땅에 당신의 자비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자유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해방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용서가 임하옵시며
(오, 주님 아니올시다)
이땅에 당신의 징벌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심판이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분노가 임하옵시며
이땅에 당신의 저주가 임하옵시며
(오, 그러나 주님 어찌 하리까)
이땅에 당신의 화해를 내려주시고
이땅에 당신의 긍휼을 내려주시고
이땅에 당신의 선포를 내리소서
(오, 그러나 주님 뜻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우리가 뭔가를 줄 수 있는 자들이라면
먼저 우리를 고독한 자이게 하소서
우리가 참으로 진리를 따르고
우리가 참으로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라면
주여, 우리를 고독한 자이게 하소서
우리가 참으로 고독한 길에 맞서서
고독을 끌어안고 번뇌하게 하소서
(오, 고난의 주님)
진리의 길은 고독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길은 고독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던짐의 길은 고독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내어줌의 길은 고독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를 따름의 길은 더욱더 고독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고독해보지 않고는
진정한 슬픔에 이르지 못하고
우리가 참으로 고독해보지 않고는
진정한 만남에 이르지 못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고독해보지 않고는
진정한 위로 진정한 사랑을
내어줄 수 없읍니다
우리가 참으로 버림당해보지 않고는
진정한 싸움에 이르지 못합니다
(오 긍휼하신 하나님)
우리의 용렬한 구호주의를 어루만지소서
우리의 찰나적 도덕주의를 무너뜨리소서
우리의 음흉한 영웅주의
우리의 비겁한 합리주의를 진맥하소서
찢어지게 가난한 우리 정신의 모래무지
여기 받쳐들었사오니
옹기를 빚으시든
청자를 빚으시든
(주여 우리는 이제 속수무책이나이다)
3.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 듯이
친구여 야훼는 언제나 침묵하셨지
언제까지나 기다림이신 야훼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열등한 우리의 신념이신 야훼
우리의 위선의 동기가 되신 야훼
비천한 분노에 심장을 맡기는 우리의
대리석 기둥이신 야훼
금술동이의 술잔을 허락하신 야훼
야훼는 그렇게 오해를 허락하셨지
야훼는 그렇게 의혹도 허락하셨지
피흘림도 난도질도 도피도 허용하셨지
우리는 다시 사도신경을 외우며
삼삼오오 어깨둥지를 틀고
오후 세시의 수유리 골짜기를 오르고 있었어
삼각산 숲정이의 모든 밑둥우리에서
나지막한 오열이 부풀고 있었어
캠퍼스의 정수리에
높다랗게 조기(弔旗)가 게양되고
검은 하늘에 몇 줄기 휙휙
마른번개가 꽃히고 있었지
우리는 오후 세시의 문으로 들어가고 있었어
어깨둥지의 시작과 끝에서
개편찬송가 삼백육십팔장이 들려왔어
뜻없이 무릎 꿇는 그 복종 아니오
운명에 맡겨 사는 그 생활 아니라
우리의 믿음 치솟아 독수리 날 듯이
주 뜻이 이뤄지이다 외치며 사나니.
약한 자 힘 주시고 강한 자 바르게
추한 자 정케함이 주님의 뜻이라
해 아래 압박 있는 곳 주 거기 계셔서
그 팔로 막아주시어 정의가 사나니.
길게 늘어뜨린 제의자락에
죄짐같은 슬픔이 흔들리고 있었지
고향땅의 부모님이 가물거렸어
건초덤불처럼 가죽만 남으신 채
논두렁에 엎드리신 칠순의 아버지,
한 장의 전보에도 새하얗게 질리시는
육순의 어머니가 걸어오고 계셨어
애닯게 애닯게 손을 젓고 계셨어
그것은 오후 세시였어
고난주간 수유리의 오후 세시,
우리는 제단 앞에 무릎 꿇었지
사납게 포효하는 수유리의 바람도
우리의 실성한 젊음도
한 트럭분의 안개를 마신 뒤
빈 깡통으로 고요하였지
몇 마리의 공룡이
유리창 밖에서 게임을 신청하자, 히야
독수리 날 듯한 합창이 시작되고 말았어
4.숨을 거두다
어둠속에서
일곱개의 성촉이 점화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어
예배실 한구석에
낯익은 사내가 쓰러져 있었어
피투성이가 된 사내의 알몸엔
군데군데 공룡의 이빨자국이
火印처럼 웃고 있었지
뭣인가 썰물 같은 아련한 목소리로
사내는 몇 음절의 유언을 발음하고
이내 숨을 거두었다 그리스도가
“다 이루었다” 발음하신 것처럼
확 피냄새가 풍겨왔다
독수리 날 듯한 우리의 믿음 위로
새로운 불안과 새로운 공포가
미증유의 굉음으로 덮쳐내렸지
복사꽃 지는 그 사월에
진달래꽃보다 더 강렬한 죽음의 징후가
우리의 해안에 정박하고 있었지
우리는 끝까지 침착하였어
사내의 시신 위에 성수를 끼얹고
하얀 마침표를 덮어씌운 다음
성금요일의 장례식은 시작되었지
찬송은 다시 한번 하늘에 닿았어
나 예수 위해 싸우는 십자가 용사라
주 이름 증거하기를 나 어찌 꺼리랴
내 전우들이 피흘려 나가서 싸울 때
내 어찌 편히 앉아서 바라만 보리요
…….
십자가 용사 된 내게
주의 일 맡기소서
이제 우리에게 출구는 없었다
노스승이 제단 위로 걸어가셨지
5.잔을 비우고
도수 높은 안경알 속에서
스승의 눈은 무겁게 타고 있었어
그는 그가 마실 잔을 높이 치켜들었고
우리가 마셔야 할 성만찬의 술잔이
천천히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아아 친구여 언제나 그랬지
성만찬의 술과 빵을 씹으며
우리가 무섭게 전율하는 이유는
예수의 化肉이거나 영생 때문이 아니라
잡초보다 무성한 ‘안락’에 대한 갈망
‘행복’을 그리는 습관 때문이었지
무사함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지
그리고 우리는 숨죽여 울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자유롭고 싶었다
우리를 길들이는 고통에 대하여
속수무책인 싸움에 대하여
그리고 ‘사회정의’라는 닳아빠진 구호에 대해서도
그렇다고 맹목적인 해결주의, 또는
늙어빠진 보수주의에 대해서도
우리는 참으로 자유롭고 싶었지
오 우리는 자유하고 싶었지
그러나 우리에게 출구는 없었다
우리 자신만이 곧 출구임을 알았을 때
우리는 이제 길이 되기로 했다
그것은 수유리의 운명이었다
수유리는 이제 수유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길이고 수난이었다 아니
그것은 꿈이고 순결이었다
그런데 친구여
우리가 길이 되기로 작정한 그날
교수들이 우리 손 꼭 쥐어주던 그날
스승과 제자의 일체감 속에서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나와 육친들
나와 친구들
나와 노년의 부모님을 갈라세우는
무서운 붕괴의 소리를 들었지
무섭고 음습하고 아득한 비명을 들었지
(오 야훼님, 꼭 이 잔을 마셔야 하나요?)
6.旗를 찢으시다
제단 위에 선 스승의 오른손에는
시퍼런 면도칼이 번쩍이고 있었지
그는 준엄하게 입을 열었다
사랑하는 임마누엘 형제들이여
이제 우리는 우리들 자신에게
냉정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쪽을 보십시오
학문의 자유와 양심을 상징하는
여러분의 校旗가 여기 서 있읍니다
36년 전에 세워진 이 깃발,
평화스러운 듯 서 있는 이 깃발,
이것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우리의 지성은 변질되고 말았읍니다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보십시오
우리가 과연 진리의 사도입니까?
우리가 과연 양심의 증인입니까?
우리가 과연 평화의 다리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와 ‘아니오’를 잃어버렸읍니다
우리는 ‘공의’의 확신을 잃어버렸고
‘옮음’의 투쟁을 잃어버렸읍니다
우리의 심장은 벌레의 집이 되었고
우리의 몸은 사탄의 자궁이 되었으며
우리의 지붕은 악마의 城이 되었읍니다
우리는 모두 모두 비겁해졌읍니다
그 상징으로 우리 기를 찢겠읍니다
우리의 양심이 회복되는 날
우리의 학문이 제 몫을 하는 날
우리의 깃발도 아물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각자의 거울로 삼으십시오
스승의 오른손이 번쩍 들렸다
그는 교기를 깊숙이 찢었지
아아 36년 동안 온전했던 깃발,
‘임마누엘’(‘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다’의 뜻)이라 쓰인 히브리 글자가
삼팔선처럼 분절되었다
더 이상의 아무 말도 필요없던 그 날
병적인 후련함만이 우리를 제압하던 그날
창 밖은 찬란한 봄볕이 내리고
상수리나무와 싸이프러스가
언뜻언뜻 흔들려 울던 그날
우리는 함께 일어나 서로를 부축하여
찢어진 깃발과 사내를 묻으러
성금요일 오후의 산으로 향했지
베르디가 낮게낮게 진혼곡을 풀었지
아누스 데이
이제 가라
가거든 오지마라
인파라디즘
7.연좌기도회
그 이후 나는 저물고 있었다
‘행복’을 탐낸다는 것이
죄악처럼 두려운 오월
자학으로 흥분된 우리는
바람이 누그러진 오월의 황혼 속에서
‘금관의 예수’를 합창하거나
본회퍼의 죽음을 묵상하다가
이내 따뜻한 기숙사로 돌아와
애꿏은 시트를 수없이 찢었다
(진리,자유,정의,평화)
시트는 우리들의 화선지였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친구들은
고통의 제왕이 되어
교문 밖으로 사라져갔고
남아 있는 우리는 길들인 두뇌로
40일 동안의 연좌기도회를 열었다
그 40일 동안 날마다 게시판엔 남은 자의
이름이 게시되었지
*5월 16일 오후 기도순서
6시 1학년 김태영
8시 2학년 김진자
10시 3학년 강맑실
12시 4학년 고정희
자정이면 나도 기도실로 들어갔다
바람에 유리창이 덜컹이고 있었지
허허 웃는 촛불에 말을 사른 뒤
빛이 절망임을 깨달은 우리는
그윽이 흐느끼는 촛불 앞에서
그의 누추환 환영을 보았다
사막의 고독 한복판 속으로
유유히 걸어가는 파라오의 등덜미,
그는 내 소리를 듣지 못했다
나는 단식으로 대결하였다
그의 본질에 인도되고 싶었지
그러나 왜 그랬을까
일주일 간의 단식을 끝낸 아침
공복으로 바라보는 수유리의 부신 햇빛이나
학장 공관 유리벽 속에서 타오르는
그 무시무시한 태양 앞에서도
현상과 인식은 화해하지 못했다
꿈의 절벽은 극복되지 못했다
나는 보았고 알았고 깨달았지만
결코 내 길과 결혼하지 못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으므로
‘불임’의 고독을 상흔처럼 지녀야 했다
8.수유리의 바람
그러나 친구여
내가 수유리를 떠나려 했을 때
수유리의 바람이 슬몃 물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그냥 숲정이나 떠도는 공기?
너는 원기들의 춤을 아느냐?
무덤이면 다 무덤이라 생각하느냐?
네 정신의 무덤은 어디?”
그래-그래-그래
그 이후 나는 만나게 되었다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기침소리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인기척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절규
수유리의 바람은 그들의 함성
그렇다 친구여
수유리의 바람은 우리들의 순라꾼
수유리의 바람은 우리들의 물음표
수유리의 바람은 우리들의 신경통
수유리의 바람은 우리들의 관절염
수유리의 바람은 우리들의 절망가
아니면 그것은 한반도의 한숨소리이거나
아니면 그것은 원귀들의 춤이거나
아니면 그것은 삼각산의 가래 끓는 소리거니,
아니면 그것은 죽창 깎는 소리이거니,
수유리의 바람소리 듣는 사람들아
누구도 더 이상의 숙면을 보류한 채
석탄불 옆에서 예례미아서를
읽어야 하리
9.다시 수유리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보다 단순해지는 것이라고 너는 말했다
그러나 친구여
우리가 수유리를 떠나오고
누추한 출판사 혹은
잡지사 기자로 전진하는 동안
다치지 않으려고 몸을 사리고
외롭지 않으려고 패를 짜는 동안
달콤한 숙면에 길들고 있을 때
녹슨 우리의 망치를 들어
뒷등을 탕 치는 손은 누구?
결국 그랬지, 친구야
나는 수유리로 다시 돌아와
무교회주의자가 되고
수유리에 떠도는 칼바람소리와 만나
칼바람과 살기로 약속하였다
오 수유리에
유엔 평화깃발을 꽂기로 했다
우렁우렁 사랑가 풀어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저 징그러운 바람소리 잠재우기로 했다
냄새